소설가 제인 오스틴은 그의 작품 <오만과 편견>에서 남녀가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결코 멋진 외모도, 재력도, 성격도 아닌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던 기존의 관점이 바뀌는 '오명의 타개'의 순간이라고 말하였다.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와 달시는 서로에게 '오만으로 가득한 허영덩어리'와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 같은 사람들인 줄로만 아는 편견주의자'로 치부하여 티격태격하지만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그간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상대의 모습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실제 우리 삶에서도 '어, 이 사람에게 이런 면이 있었네'라는 생각이 바로 호감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show의 광고 <1살의 쇼>는 이러한 오명의 타개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결혼하여 아이를 가지면 그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체험하고게 되고 기뻐한다. 그러나 <1살의 쇼>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아기의 입장에서 성장의 증거는 끊임없이 관심을 받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기어다니던 아이가 걸음마를 하고 엄마의 관심을 끌고 '다음에는 달리기를 해볼까'는 식으로, 자신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 조금씩 줄어들 때 쯤 자신이 또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표현을 하는 것이다. 적절한 상황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말이다.
실제로도 아기들은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 울고 웃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니 <1살의 쇼>는 어쩌면 아기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어본 광고일지도 모르겠다.
부부의 사랑의 결실인 아이가 갑자기 걸음마를 하거나 '엄마','아빠'를 말하며 입을 뗀다면 무엇을 할까. 아마도 당장 남편에게 연락을 할 것이다. <1살의 쇼를> 보고 있으면 여러 부분에서 연상이 되는, 1998년에 방영되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광고인 lg텔레콤의 pcs폰 광고가 떠오른다.
당시 광고에서 김승우에게 전화를 걸어 아기가 '아빠!'하고 외치는 광고와 비교하여 이번 <1살의 쇼>는 그러한 상황에서 제품의 기술력이나 상황, 메시지 등이 더욱 재기발랄하게 진화된 오마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광고가 노리는 것은 '소비로의 유도'이고 그것을 위한 방법으로 쓰이는 것은 '관심유발'이다. 그러한 관심유발은 '인식의 전환'에서 비롯되고 소비자의 '공감'을 통한 '인식의 전환'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하여 고객의 '소비'로 연결시키는 것이 좋은 광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이것일 것인데, <1살의 쇼>는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훌륭하게 이끌어내었고 소비자들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데에도 성공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고객의 행동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