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
정상수 2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 kimthomas@hanmail.net) 출처 : 광고정보 | 사진 박정훈
자기만의 시각 찾기

정상수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자기만의 시각 찾기’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기에 자기만의 시각에 따라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데에서 창의적인 광고가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남과 다른 앵글로 창의적인 고뇌를 하는 것이 크리에이티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와 함께 광고의 어느 한 장면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솔 깃하게 당길 수 있도록 감각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주문도 잊지 않는다.

“일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이 하게 되고, 일을 적게 할수록 더 적 게 하게 된다.”(잭 포스터, 1999) 이는 세상사의 진리이자 광 고판의 진리이기도 한데, 어차피 어떤 조직을 이끌어가는 것 은 일을 더 많이 하는 소수 집단이 아니겠는가. 정상수 역시 크리에이티브 자유권을 확장하려는 맥락에서 스스로의 영 상 디자인 실력을 부단히 연마하였다. 간섭하는 사람이 많 아질수록 몽니를 부리고 싶은 것도 광고 창작자들의 생리일 진대, 그동안 그는 어떻게 자신을 조율해왔을까.


•프로듀서로 시작하셨으니까 아무래도 그림으로 먼저 생각하는 습관이 있으시겠네요. 카피와 영상의 자연스러운 접목이 중요한데 평소 어떻게 노력하셨는지요?

저는 약점 투성이인데 건방지게도 지금까지 용케 잘 속여 온 것 같아요. 운 좋게도 비주얼로 생각이 떠오르고 해서 당연히 러프를 많이 그려요. 제가 뭐 언제 제대로 그림 을 그려봤겠어요? 다만 연극영화과를 나왔기에 영화 문법, 영상 문법, 드라마투르기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자동적으 로 그려질 때가 있어요. 제가 감수성이 예민할 때 배우고 고 민했던 것이 희곡의 작품 분석, 연기 지도, 드라마 연출인데, 욕먹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되게 쉽더라고요. 광고를 만약 드라마 장르로 분류하면 목적극(目的劇)에 해당되잖아요. 상업활동을 돕는다는 배짱을 갖고 덤볐었고 필요에 따라 러 프 콘티를 그렸지요. 카피 쓰는 문제는 아직도 부족한데 더 노력할 생각입니다.


•국제광고의 맥락에서 우리 광고의 완성도가 많이 떨어 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광고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한마디로 디테일을 더 챙겨야 해요. 뉴욕 제작물, 유럽 제작물을 한국 제작물과 비교 해 보면 디테일 면에서 차이가 많아요. 사실 스토리텔링 기술 이나 그것을 재현하는 수준이 비슷하다면 나머지는 완성도 를 높이는 디테일에서 판가름 나거든요. 예를 들어, 지나가 는 행인의 힐끗거리는 장면까지도 너무 예쁘게 꾸미려고 하 는데 그런 것이 가장 수준 낮은 디테일이죠. 같은 아시아권 인 태국하고만 비교해 봐도 많이 뒤떨어져요.


•태국의 크리에이티브가 엄청 좋더라고요. 광고 표현의 각 부분에서 디테일을 살려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태국이 최근에 칸느에서도 수상 실적이 많고 해서, 어떻게 하면 그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싶어 태국 광 고를 오래 분석해보기도 했어요. 리얼리티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 조금 더 소비자들이 공감하고 빠져들게 하려면 드라마 의 기본기를 더 익힐 필요가 있어요. 조명, 촬영, 편집, 색 보정 같은 것은 외주를 주고 외국에서 컬러 그레이딩을 해오니까 때깔은 좋아지는데 보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 전달력이죠. 디 테일이 약하니까 모든 것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는 이 부분에 집중적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최근 광고 중에서 디테일을 살려 잘 만들었 다고 생각하시는 광고 하나를 골라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겠어요?

노부부가 마당에 낡은 텔레비전 수상기를 내놓고 “우린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하는 쇼(Show) 광고를 보 세요. 곧이어 “연속극 옆집 가서 본다.”라는 카피를 잊지 않 고 덧붙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듯한 자연스런 연출력, 사실적인 모델 캐스팅, 보는 사람을 밝고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 연기력, 단순하면서도 세심한 화면 구성, 귀에 익어 쉽고 기분 좋게 하는 배경음악 같은 것이 인상적인 광고인데,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역시 ‘통찰력’입니다. 사실 오래 전에 선배들이 이미 써먹은 플롯이라 신선도는 떨어지 지만, 요즘 고객들에게는 새로울 테니 굳이 문제될 것이 없겠 지요. “좋은 것은 오래오래 반복하라.”는 오길비 선생의 말씀 이 새삼 옳았다고 생각돼요.


•눈길 끄는 광고를 보면 상품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드 시는지요? 아니면 광고 표현과 상품 구매욕의 유발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상품 구매로 이어지도록 광고를 만드는 것이 우리 가 할 일이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둘은 다르다고 봐요. 요즘은 한 카테고리에 여러 개의 뛰어난 브랜드들이 경 합하니까 소비자들은 좀 더 좋은 것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인터넷을 뒤져 가격 비교를 하거나 사용자 후기 같은 다른 정보를 수집하거든요. 상품 구매를 유도하려면 인터넷 같은 다른 도구를 활용하잖아요. 요즘 광고는 브랜 드에 대한 ‘좋은 느낌(good-will)’을 만들어 주기만 해도 다 행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광고 표현과 상품 판매는 별개라는 말을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광고 표현과 상품 구매욕의 유발은 어쩌면 별개일 수 있다는 그의 발언은 광고 효과가 약해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진술이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바탕에 는 그의 솔직한 성격이 있었을 터이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 디 있으랴만, 그 역시 뒤늦게 광고를 시작함으로써 이런 저런 상처를 많이 받았으리라. 친구는 배우로 유명세를 타고 있 는데 남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 광고 일을 하면서 어쩌면 지 독한 열등감도 느꼈을 터. 그런 순간에 홀로 기울였던 술잔은 과연 감미롭게 입술에 착 달라붙었을까 아니면 독한 냄새 를 풍기며 슬쩍 비켜갔을까? 이런 저런 술잔을 기울여 보았 기에 그는 이토록 솔직해지지 않았겠는가.

내가 당신의 안방에, 당신의 지하철에, 당신의 인터넷에 쳐들어 갈 텐데 ‘미안합니다’ 하고 말하는 데서 아이디어 발상의 화두를 찾을 수 있어요. 어떤 식으로든 광고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방법을 찾으려 계속 궁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창의적인 광고는 더 오래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것들이 창의적인 광고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아이디어가 바뀌더라도 브랜드 이미지를 동일하게 유지해줄 필요가 있는데, 먼저 이런 생각이 전제되어야 창의 적인 광고가 나올 수 있어요. 그리고 어떤 아이디어가 효과 적일 경우에는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쓰는 참을성 도 필요하고, 직격탄을 쏘지 않고 딱딱한 이야기를 슬기롭 게 돌려서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해요. 특히,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표현해서 보는 사람에게 생각 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주는 아이디어도 창의적 인 광고를 만드는 필요조건이 됩니다.


•우리는 보통 “좋은 광고는 누가 봐도 좋다”는 말을 많 이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만인을 만족시키는 광고는 없고, 재미있는 광고가 좋은 광고라고 생각해요. 약장수가 왜 목 아프게 굳이 목소 리를 변조해서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라고 외치겠어요? 왜 공짜로 차력을 보여 주겠어요? 왜 꼭 드라마에는 삼각관 계나 불륜이 나오겠어요? 아니면 재미가 없거든요. 누가 광 고를 찾아서 봅니까? 광고인들은 ‘어떻게 고생해서 만든 광 고인데 안 봐?’ 그러는데 소비자들은 보지 않아요.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에요. 하워드 고시지가 “광고를 자발적 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옳아요. 좋은 광고는 어쨌든 신경을 건드리므로 보다 보면 “아쭈!” 하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어요.


•그렇다면 “아쭈!” 하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해야 쑥쑥 나올 수 있을까요?

아이디어에 대한 통찰력은 기획팀에서도 나오고 광 고주에서도 나오고 소비자의 말에서 찾아내기도 하고 여러 경로가 있는데, 거기까지는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가능해요.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잘 녹여서 기술적으로 담아내느냐는 만드는 자들의 몫이죠. 따라서 책임을 져야 하니까 저도 때 로는 막 흥분하고 싸우고 던지고 당연히 그랬어요. 요즘 같 은 상황에서는 인사이트를 포착해서 표현할 수 있으면 너무 행복한 일이고 어느 정도 주목만 끌어도 아이디어가 돈 값을 한다고 봐요. 소비자의 구매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은 고전적이고 순진한 시대의 이야기인데, 창작자 입장에서 보면 수백 편이 명멸하는 와중에 신경이라도 쓰이게 해야 어 느 정도 돈값을 하는거죠.


•잭 포스터의 ‘잠자는 아이디어 깨우기’(1999)라는 책 도 번역하시고 지금까지 숱한 아이디어 발상을 해 오셨 을 텐데 이른바 정상수 식 아이디어 깨우는 방법이 있 을 것 같은데요?

아직도 풀어야할 숙제입니다. 사실 저는 그림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되어있어 큰 문제는 없지만 어차피 빗대어 말하기니까 카피에서는 말을 많이 돌려서 해봐요. 어떤 식으 로든 광고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계속 말을 돌려봐야죠. 정해지지 않은 콘셉트로 이렇 게 저렇게 50개, 100개까지 계속 돌려 말해보고 낙서를 하다 보면 그중에 “아쭈!” 하는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있어요. 다 시 말해서, 내가 당신의 안방에, 당신의 지하철에, 당신의 인 터넷에 쳐들어 갈 텐데 ‘미안합니다’ 하고 말하는 데서 아이 디어 발상의 화두를 찾을 수 있어요.

•소비자의 공감을 유도하는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 소비 자와의 접촉 순간에 겸손하게 다가갈 수 있는 아이디 어 발상을 하라는 말로 들리는데요.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팔아야 하는 입장인데 아이 디어를 팔 때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의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어요. 그 시나리오를 파는 방법을 연구해야지요. 이것은 크리에이티브 문제가 아니에요. 내용을 제시하고 소비자의 동의를 구하기까지가 실은 워드 플레이(word play)와 같아 요. 우리는 이메일을 쓰거나 연애편지를 쓰거나 인터뷰를 하 거나 순간순간에 자신의 메시지를 파는 방법이 너무나 서툴 러요. 그 과정에서 오류도 많이 생기고 해석도 나름대로 해버 리게 됩니다. 의도한 대로 설득하고 소비자의 동의를 구하려 면 보다 타당하고 적절한 워드 플레이가 필요해요.

점잖지 못하게시리 ‘돈값’이라니. 하지만 광고란 것이 어차피 점잖지 못한 상태로 적당히 속되고 적당히 논리적이고 적당 히 예술적인 이상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하면 돈의 값 어치를 따지는 것이 당연할 것도 같다. 이런 상황을 두고 훌 륭하신 분들은 효과성(effectiveness)이라는 유식한 용어 로 광고가 과학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다는 듯이 아름답게 포장해왔으니까. 하지만 그 효과성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과학적으로 딱딱 들어맞지 않고, 어차피 전달하는 메시지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역시 훌륭하신 분들이 말하지 않았 던가. 따라서 그가 말한 워드 플레이 역시 메시지의 수준을 기가 막히도록 절묘하게 맞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 할 필요가 있겠다.


•그동안 많은 광고를 만드셨는데 정말 애착이 가는 것 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방송에 제대로 나가지도 못 하고 사라진 수많은 좋았던 아이디어들이죠. 브랜드 빌딩에 대해 관념적으로 공부는 했지만 실제로 뚝심을 갖고 브랜드 빌딩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많이 변형되고 새로워지기는 했 지만 브랜드 빌딩 면에서 테이스터스 초이스가 기억이 나요. 그리고 컨디션이란 브랜드가 있었어요. 카피가 네 줄이었는 데 “접대가 많은 비즈니스맨을 위하여”, “거뜬하구만”, “잘 들 어갔어?” 등 모두 심의에서 걸렸어요. 그래서 100명을 캐스팅 해 “아차! 컨디션”을 몽타주로 찍겠다고 했어요. 며칠 동안 무명 배우들을 설득해서 엄청나게 리얼한 “아차! 컨디션”이 수백 개가 잡혔어요. 그 광고도 참 기억이 나요.

•세상만사가 다 정답이 없는데 광고 창의성에 대한 생 각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관점이 다 를 텐데, 광고 창의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광고 크리에이티브에서 창의성이라고 하면 결국 자기만의 시각 찾기가 아닐까 싶어요. 저만의 독창적인 생각 은 아니지만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모든 것을 자기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데서 창의적인 광고가 만들어진다고 봐요. 사람들은 비슷한 아이디어가 나오면 어 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냈느냐고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전 세계의 물건들을 관찰하지 못한 잘못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프리카든 스리랑카든 어디든 있을 수 있는 것이 아이디어 잖아요. 이런 저런 자료들이 다 책에 있는데도 자기 시각에서 뒤집어 읽지 않고 무조건 노(No)하며 백지상태에서 시작하 면 낭비가 너무 많아요.

•남에게 맞추기보다 자신의 관점과 철학이 들어가야 한 다는 말씀이시죠? 그렇다면 정상수 식 앵글은 어떤 것을 지향하셨는지요?

별로 내세울 것은 없는데 그냥 늘 있었던 것을 제 생각대로 신선하게 바꿔주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우리 광고 인들은 수많은 밤을 괜히 샌 적이 많잖아요. 밤을 새는 그 자 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과 다른 앵글로 창의적인 고뇌를 하는 것이 크리에이티브 생산성을 높일 수 있어요. 광고의 어 느 한 장면에 소비자의 마음이 솔깃하게 당기도록 감각의 힘 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요.

정상수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자기만의 시각 찾 기’다. 성서에 나와 있듯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기에 어차피 자기만의 시각에 따라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데에 서 창의적인 광고가 태어난다는 것이다. 일찍이 이탈리아 역 사가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는 역사란 언제나 새로 쓰이며 쓰는 자의 몫이기 때문에 쓰는 사람의 관점에 따 라 역사적 실재가 달라진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역사적 판단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실천 적 요구이기 때문에 모든 역사에는 ‘현대의 역사’라는 성격이 부여되며 과거의 사건은 그 안에서 메아리칠 뿐이라는 뜻이 다. 광고 역시 동시대적 산물이자 당대의 현상을 세세히 증거 한다는 점에서, 그가 주장하는 자기만의 시각 찾기는 광고 인들에게 역사가의 눈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나 다름 없다. 이를테면 크리에이티브 자유권을 확장할 수 있는 광고 창작자들의 유일한 비밀 병기가 자기만의 시각 찾기라는 점 을 그의 방식대로 ‘돌려서’ 표현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해당 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더해 보세요.(40 내공 적립)

FAQ

Contact

개인정보취급방침I회원약관I회사소개
06039)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12길 25-1(구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11-19)
사업자등록번호 : 211-87-58665 통신판매업신고 제 강남-6953 호 (주)애드크림 대표이사 : 양 숙
Copyright © 2002 by TVCF.All right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