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 -김 종 원-
물음느낌표 그리기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 kimthomas@hanmail.net) 출처 : 광고정보 | 사진 박정훈

그는 진솔함이 광고다운 메시지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진솔한 표현이란 무엇이겠는가? 상품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 어가지 않고 사람들(소비자)의 생활 속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진실하고 솔직하게 그려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밍 밍함과 뾰족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데서 성패가 엇갈리는 일상의 단면형 광고, 그는 이와 같은 가장 풀기 어려운 표현의 방정식을 두고 진솔함이라고 에둘러 말했을 따름이리라.

광고란 더하기의 미학이 아니라 ‘빼기의 미학’이라는 말은 광 고 표현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앤솔로지다. 하지만 빼기의미학을 광고의 결과물로 그럴듯하게 구현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광고란 예술이 아니며 억지로 예술의 범주에 끼워넣는다 하더라도 팝 아트 계열에 가까운, 상업 예술에 불과 한 태생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중간에 자꾸 끼어들면 아무리 빼기의 고수라 할지라 도 결국 항복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것이 광고주가 내준 숙제를 해야 하는 자의 운명일진대 이때 표현의 절제를 도모하려면 상당한 내공과 담력이 필요한 법. 경우에 따라 광고주 나 광고회사와 대결하기보다 자신과의 대결을 애면글면 견뎌내야 하는 문제가 새삼 중요해질 수 있다.주(Zoo) 프로덕션의 김종원 감독(1957~)은 자신이 만든 광 고가 소비자들에게 공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표현의 절제 문제를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 그의 영상은 때로 밍밍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표현을 업으로 삼는 자에게 약이 될까독이 될까? 도대체 그는 아직도 항복하지 않고 무슨 배짱으로 버티고 있는 것일까.

감독님의 영상은 좀 밍밍한 구석이 있어요. 과장하지않은 사실적인 영상 속에 판매 메시지가 보일락 말락 담겨 있는데, 수위 조절이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큐멘터리의 리얼리티와 광고에서의 리얼리티는분명 차이가 있죠. 그 선이 조금만 낮거나 높아도 안돼요. 말씀하신 대로 제가 만든 광고는 밍밍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데 그 수위 조절이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힘들어도 수위는조절해야죠. 처음에는 밍밍할지 모르지만 마치 평양냉면 국 물처럼 자꾸 먹어보면 그 맛을 알아가듯이 나중에는 은근한맛을 알게 돼요. 우리 광고도 외국 광고도 너무 자극적인 메시지가 많아요. 그렇게 되면 광고의 은근한 맛이 사라질 수있어요.

감독님만의 영상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동안 어떤 노력들을 하셨나요? 영상미란 제품 상황이나 소비자 특 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지 않을까요?
글쎄, 제 스타일이 무엇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뭔지 잘 모르니까 그것을 위해 어떤 훈련 같은 것은 해보지않았어요. 하지만 어떤 사물을 보거나 작업에 들어가면 어떤 취향이 잠재되어 있다가 스타일로 나오는 것 같아요. 김종원과(科)로 고착되지 않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져왔는데 사실 그게 더 힘들었죠. 제가 어떤 스타일을 향해 달 려간 적은 없어요. 어떤 스타일로 너무 굳어질까봐 오히려 걱정을 했죠.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평소 어떤 분들을 자주 만나시는지요?
제일 가까운 친구가 음악 하는 김수철이나 ‘난타’하는 송승환이죠. 저는 광고 쪽 사람들보다 다른 분야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요. 얼마 전에는 사진하는 배병호 선배를 만났는데 그 분은 늘 새로운 대상에 빠져있어요.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고여 있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주변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요. 예술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 가 많은 편인데 그런 과정에서 영상의 영감도 얻어요.

지인들과 만나면 정보도 교환하며 서로간의 일에 도움을 많이 얻겠네요.
김수철이나 송승환하고 만나 10시간을 같이 있으면 각자의 일에 관련된 말은 10분 정도만 해요. 그냥 같이 놀고 그러는 것이 진짜 배움이죠. 언젠가 수철이랑 밥 먹다가 음향 이야기가 나와서 정말 듣기 힘든 음향 강의를 들었죠. 그런 것이 재산이 됩니다. 배 선배 역시 스페인 정부의 초청으 로 한국의 비원(秘苑)하고 스페인 알람브라(Alhambra) 궁전의 정원을 비교해서 찍는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또 한 번짜릿했어요.

영상이 됐건 카피가 됐건 그 내용이 진솔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광고에서 리얼리티가 있잖아요. 진짜 다큐멘터리 같은 리얼리티까지 가야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움직이고 공감대가 생긴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김종원 감독이 작업한 포스코 광고 ‘뻥튀기’ 편과 SM5 ‘안성기’ 편.
지금 ‘짜릿했다’고 하셨는데 텔레비전 광고를 봤을 때도 짜릿한 순간을 많이 경험하시는지요?
좀 달라요. 사진이나 음악이나 연극이나 다 조금씩 달라요. 하지만 그런 장르에는 여름철의 시원한 탄산수 같은 그 무엇이 있는데 광고에는 없어요. 그들은 숙제를 받아서 작업하지 않고 문득 생각나면 놀듯이 작업을 해요. 관객이 송승환에게 “너 이것 좀 해줄래?” 이러지 않잖아요. 그리 고 김수철에게 “국악을 기타로 연주 좀 해줄래?” 이러지 않잖아요. 김수철은 어느 날 국악이 좋아져 산조(散調)라는 훌륭한 장르를 기타로 하다 보니까 훌륭한 음악이 태어난 거 예요. 김덕수 형님도 북 치고 장구 치고 놀다보니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지 누가 주문하지 않았잖아요. 하지만 광고는 누군가의 주문에 따라 숙제를 해줘야 하잖아요.

초보 때는 그 숙제 의식이 강했겠지만 지금의 위치에 서는 숙제 의식에서 벗어나 광고주나 광고회사 사람들 을 이끌어가는 측면도 분명히 있지 않겠어요?
그 숙제가 조금 재미있어지기는 했지만 근본을 크게 벗어나지 못해요. 초보 때는 학생 시절 과외 선생님이 좀안 왔으면 하는 마음이거나 숙제 좀 내주지 말고 그냥 갔으면 하는 그런 기분이었다면, 요즘에는 그래도 숙제를 기분좋게 하는 그런 정도의 차이지 숙제는 숙제죠. 요즘에 제가 후배들한테 “야, 나도 패션 했었어!” 그러면 “에이.” 이래요. “나도 코믹한 광고들 많이 했었어!” 이러면 다들 안 믿어요. 그러면 릴(reel) 테이프를 보여줘요. 저는 뭘 잘할 수 있는지 느끼 지 못하고 30대 후반까지 갔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감독들이 자기 작업에서 짜릿함을 오랫동안 느끼려면 자기가 잘할수 있는 표현 영역이 어디 있는지를 빨리 찾아야 해요. 자기만 잘할 수 있는 표현을 분명히 가져야 된다는 말을 꼭 해주 고 싶어요.

유행을 따르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독창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자기만 잘할 수 있는 표현이란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질문에 외로움과 사투하며 답을 찾고 그리하여 어떤 감동적인 느낌을 갖는 순간일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적어도 자기만은 분명히 확신하는 그런 표현의 경지이리라. 따라서 그 짜릿한 순간은 쉽사리 다가오지않고 절대 고독 속에서 숱한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나서야 잠깐 동안 번쩍하는 황홀함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광고회사 사장 마틴 스펙터(Martin K. Speckter)는 이런 순간을 설명하려고 1968년에 이미 ‘물음느낌표’의 개념을 제시 하지 않았을까? 그는 의문과 감탄이 교차하는 부호를 사용하면 광고 효과가 더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공모를 통하여마침내 감탄의문부호인 인테러뱅( : interrobang)을 결정했 다. 인간은 물음과 느낌을 동시에 갖고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물음표(?)와 느낌표(!)는 공존하며 두 가지 부호는 상호보완적일 수밖에 없다. 김종원 감독이 말하는 자기만 잘할 수 있는 표현이란 결국 광고 창작자들이 스스로의 의문에서시작해서 스스로 감탄하는 순간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물음느낌표( )를 그리는 과정이리라.

감독 스스로 광고를 만들기도 하지만 남이 만든 광고를 보는 소비자가 되기도 하잖아요. 이때 광고를 보는 몇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는데, 어떤 점에 주로 관심을가지는지요?
어떤 상품이냐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달라요. 과장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죠. 그래서 연기자에게 어떤 연기를 주문할 때도 과장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표현하 는 배경조차도 과장하지 않아요. 저는 자동차를 유난히 많이 찍는 편인데 전에는 그림자(reflection)를 기름 부어 놓은것처럼 표현하는 것을 강조했거든요. 요즘엔 그냥 생활 속 에다 툭 넣고 찍어요. 안성기 선배하고 김미숙 씨 하고 찍은 SM5 광고에서는 그림자가 지저분한데도 그냥 갔어요. 소비자 반응까지는 모르겠으나 주변 사람들은 “굉장히 좋던데?” 이래요. 이런 소리를 들으니까 과장하지 않는 방법들을 자꾸 찾게 돼요. 그러다보니 아마추어 배우들과 작업하는 광고가 많아요. 아마추어 연기자들에게 연기 주문을 하면 연기 를 잘 못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상황 속에 끌어들일까 하는 연구를 엄청 많이 해요.

상황 속으로 어떻게 끌어들이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설명해주시겠어요?
탄자니아에 가서 포스코 광고를 찍는데 탄자니아 아이들은 동양인도 처음 보고 커다란 뻥튀기 기계도 처음 봤겠죠. 생전 처음 강냉이 튀기는 소리를 듣는 아이들한테 웃 으면서 귀를 막으라고 유도할 수 있겠어요? 첫날 카메라를 뻗치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촬영 감독에게 뻥 하는 순간에 귀 막는 장면은 무조건 카메라 두 대로 찍으라고 했죠. 카 메라 두 대로 몰래 찍고 나머지 즐거워하는 장면은 같이 놀아야 돼요. 상황에 친숙해져 그 속에 들어가게끔 유도해야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다큐멘터리 동영상 찍을 때 두 달전에 간답니다. 미국 사람들은 장기적인 작업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그 사람들하고 열흘씩 같이 있을 시간이 안 되잖아요. 짧은 기간이지만 그들과 충분히 친해져서 저를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카메라를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시작해요. 작업 시간을 하루 이틀 더 길게 가지려고 노력할 뿐 이죠. 지금쯤 되면 얼마든지 숙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 않느냐고 하셨는데, 제가 예전하고 달라졌다 뿐이지 광고주들은 아직도 이해를 못해요.

포스코 광고에서는 새로운 문명기계를 보고 놀라는 탄자니아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 자연 스럽기는 하지만 연출된 자연스러움 같습니다. 이런측면에서 밍밍함과 뾰족함 중에서 상황을 어디에 맞추느냐가 감독의 몫이라고 봅니다.
그게 제일 어렵죠. 한동안 크리에이터들의 화두가 되었던 인사이트 찾기가 정말 어려워요. 예를 들어, 어차피 포스코 광고인데 포스코가 좀 많이 보여야 한다는 주문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들 사이에서 보일듯 안 보일듯 숨어서 그들을 연결해 주는 철 이야기가 더 강하지, 철 이야기자체를 과장시키면 소비자의 마음을 못 움직인다고 보았어 요. 그러니까 그런 과장을 하더라도 과장은 광고에 숨어있어야 합니다. 광고가 끝나는 순간에 오히려 긴 여운이 있는광고가 더 감동적이잖아요.그는 과장하지 않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장이 숨어 있는 표현이라고 보았다. 광고의 속성상 본질적으로 과장된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장됨이 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과장을 숨기는 것과 과장이 숨어 있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가 인위적으로 과장을 가리는 표현이라면 후자는 보일듯 안 보일듯 숨어서 설정과 설정을 연결하는 것이라 시소게임 같은 긴장감과 생생함이 살아있을 터이다.

광고에는 과장된 표현이 있게 마련인데 허위광고나 허풍광고가 아닌 좋은 의미의 과장된 표현 기법이 있겠죠. 과장광고를 만든다면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요?
완전히 세게 가는 경우도 있겠죠. 돌이켜보면 한해에 패션 광고만 17편을 찍은 적도 있었고 유머광고를 많이 찍은 적도 있어요. 유머도 과장의 속성에 들어갑니다. 지 금 서정완 감독이 다 맡아서 하고 있는데 제가 과장 광고 만들면 더 화끈하게 할 걸요? 예를 들어 “자장면 시키신 분~”했던 휴대폰 광고를 제가 처음에 맡았었는데 도저히 소화할 수 없었어요. 정말 자신이 없어 서정완 감독한테 맡기면 어떻겠냐고 광고회사에 제의해서 그렇게 되었는데 그 광고가 공전의 히트를 쳤죠. 그러니까 “자장면 시키신 분~” 정도의 수 준이라면 소비자들이 굉장히 재미난 과장으로 받아들일 수있는데, 저항감이 느껴지는 과장은 오히려 광고 효과가 전혀없어요.

과장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렇다면 광고를 만들 때는 어떤 것이 중요할까요?
영상이 됐건 카피가 됐건 그 내용이 진솔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광고에서 리얼리티가 있잖아요. 어떤때는 진짜 다큐멘터리 같은 리얼리티가 있어요. 그런 수준까 지 가야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실험을 해서 표현해봐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전반적으로 진솔하게 표현해야 소비자들이움직이고 공감대가 생긴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판매 메시지를 분명히 담고 있지만 전혀 그런 냄새가 안나는 광고를 말씀하시는 거죠? 광고주의 승낙을 받기도 쉽지 않고 사실 엄청 어려운 일이잖아요.
살다보면 자꾸 뭔가 떨쳐 버리려 하는 마음이 생기는 때가 있어요. 버리고 절제하는 것이 익숙해지는 순간이 분명 있어요. 어떤 목표를 세워놓고 그대로 해야지 하지는 않 지만 하다 보면 자꾸 버리게 돼요. 찍을 때도 콘티를 준비할때도 나중에 후반 작업을 하며 편집할 때도 옛날 같으면 아까워서 못 버리는 그런 장면들을 자꾸 버리다 보니까 아까 워할 만한 장면으로는 광고를 잘 안 만들게 돼요.

그는 진솔함이 광고다운 메시지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진솔한 표현이란 무엇이겠는가? 숙제 의식에 시달리면서도 조금 재미있게 숙제를 해야 하는데, 상품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고 사람들(소비자)의 생활 속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진실하고 솔직하게 그려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상의 단면형(slice of life) 광고들이 대체로 이 범주에 해당될 터. 광고를 만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일상의 단면형을 만만하게 보고 쉽게 달려들었다가는 허접한 광고를 만들기 십상이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표현 기법이기도 한데, 밍밍함과 뾰 족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데서 완성도의 성패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버리는 데서 오는 자신감 역시경험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는 이와 같은 가장 풀 기 어려운 표현의 방정식을 두고 진솔함이라고 에둘러 말했을 따름이리라.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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