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
정상수 1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 kimthomas@hanmail.net) 출처 : 광고정보 | 사진 박정훈
크리에이티브 자유권의 확장

그는 우리 광고에 필요한 것이 ‘매력’이라고 본다. 사람이나 광고나 매력 없이는 관심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하고 가진 것이 많고 유행에 맞춰 잘 차려 입어도 매력이 없다면 눈길도 주기 싫듯이, 우리가 끊임없이 상업적 목적의 광고를 만들어내더라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매력을 광고에 심어줘야 한다. 아니면 가까이 하기 싫어지므로. 여기서, 광고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단순함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역배우로 활동하다 철들면서 연극에 빠졌다. 다시 CM 프로듀서로 출발하여 외국계 광고주에게 콘티를 ‘팔기’ 위해 더듬거리며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제, 자신의 광고 철학을 영어로도 제법 전달할 수 있게 된 광고 창작자가 있다. 그동안 다국적 브랜드의 광고를 만들며 외국계 광고회사에서 경력을 쌓아왔으니, 그를 국제광고 크리에이티브 전문가라고 불러도 큰 무리는 없으리라. 금강오길비 그룹의 정상수(1959~) 부사장은 세상 모든 것이 잡스럽게 버무려지는 광고의 생리처럼 다양한 이력을 지녔다. 그와 함께 난마처럼 얽힌 광고 창의성의 문제를 풀어보자.


• 그동안 주로 다국적 브랜드들을 맡아오셨는데, 국제적인 광고 창의성의 기준이랄까, 국내 광고에 적용되는 것과 다른 점이 있는지요?

기준이라기보다 트렌드나 경향은 있어요. 우리와 세계를 비교하며 작은 반란을 시도해보지만 어느 정도 반란을 일으키고 혁명을 해도 개인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크리에이터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정권인 크리에이티브 프리덤(creative freedom) 문제도 국제적인 맥락에서 보면 창의성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광고 창작 과정에 간섭하려고 하는데, 실제로 콘셉트를 정하고 방향을 잡아가는 책임은 크리에이터가 져야 하니까요.


• 크리에이티브의 자유권 행사가 그렇게 중요한지요? 자유 못지않은 막중한 책임이 뒤따를 텐데요.

저는 필름 프로듀서로 시작해서 한동안 좋은 시절을 보냈어요. 부분적으로 표절 광고 만들면서도 배우고 광고주한테도 많이 배웠거든요. 사실 PD가 조직의 필요나 직업의 분화에 따라 현재의 모습이 되었지만 그때는 PD에게 크리에이티브 프리덤 문제가 매우 중요했어요. 아이디어 하나를 모든 매체에 적용하던 시대라 긍정적인 면도 있었는데, 그때 만든 광고가 지금까지 계속되기도 해요.


• 예를 들어 어떤 광고가 있을까요?

테이스터스 쵸이스 같은 광고지요. 저 혼자 만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처음 론칭할 때 만들어 놓은 기본 구성은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모델이나 스토리만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크리에이티브 자유의 문제가 없어진 지금에서 보면 오히려 그때가 더 좋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옛날 오리콤 당시의 러시 필름(rush film) 뭉치가 있어서 봤더니 정말 감동이었어요. 헤어스타일이나 음악, 편집, 템포 이런 것은 다 유치했지만, 미장센같은 것이 참 뛰어났어요.


• 옛날에는 우리가 외국 광고 베끼느라 바빴는데 이제 우리 아이디어가 전 세계에 나간다는 점에서 광고 창작자로서 돈으로 비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끼셨을 텐데요.

만드는 성실성만 보면 짧은 시간에 우리가 외국을 엄청 따라잡았어요. 사실 모토로라 광고도 외국 광고회사와 비딩을 해서 이겼고, 한국에서 만들어 뉴욕에도 틀고 전세계로 나갔죠. 조금 덜 다듬어져서 그렇지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상에서 우리가 떨어질 일이 없거든요. 방법이나 자유를 안 줄 때 설득하는 기술을 잘 몰라서 그렇지요.


• 광고 창작자들은 대개 오길비 스타일과 번벅 스타일을 비교하는데, 지금의 오길비 월드와이드의 크리에이티브 철학은 무엇인지요?


크리에이티브를 중심으로 보면 옛날처럼 오길비스타일로 분류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360도 브랜딩이 지금의 오길비 월드와이드에서 내세우는 철학입니다. 예를 들면 4대 매체의 영향력도 줄어들고 하니까, 매체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게 아니라 360도 브리프에서 시작을 해요.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콘셉트가 무엇인지를 찾아낸 다음에 아이디어 뿌리를 내려요. 특히 오길비에서는 재미있는 크리에이티브를 웹 광고에서 시작하는 것들이 많아요. 싱가포르에 웹카드라는 회사가 있는데, 참 재미있는 게릴라 마케팅을 많이해요. 예를 들어, 맥도날드 캐릭터가 벤치에 앉아 있는데 아르바이트생을 써서 그 캐릭터 발치에 KFC 봉지를 놓고 오는거예요. 그게 TV나 인터넷으로 보도되고 난리가 났어요. 회사 안에 어디라도 메시지가 나오고, 트럭의 바퀴, 우물 안, 지하철 등 어떤 곳이라도 메시지가 나와요. 빅 아이디어를 찾아내 360도로 접근하는 퍼포먼스가 중요합니다.

광고를 퍼포먼스로 접근하자는 그는 어린 시절에 아역 배우로서 연기자 강남길 씨와 송승환 씨 등과 함께 활동했었다. 계원예고에서 5년간 연극과 영화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그와중에 새뮤얼 베케트의 미발표 희곡들을 번역하여 단막극으로 무대에 올렸다. 화장품 광고 모델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백상예술대상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광고에 대한 관심으로 오리콤, 린타스 코리아, 시드(SYD) 프로덕션등을 거쳐 지금은 금강오길비 그룹에서 크리에이티브를 총괄하면서 360도 브랜딩을 위해 크리에이티브의 자유권 신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1987년이라는 비교적 늦은 시점에 그는 왜 하필 광고라는 험한 직종을 청춘의 일거리로 택했던 것일까?


• 광고를 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으셨는지요?

대학원 석사논문을 쓰던 무렵이었는데 희성산업에서 오라고 해서 2주일간 고민을 하다가 방송국에 계시던 멘토가 될 분들한테 여쭤봤죠. 하지마라가 90%였어요. 밥벌이의 제1안으로 광고를 한다는 것이 당시의 기준으로 치욕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변형해서 할 수 있는 것이 광고더라고요. 방송국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광고쪽이 제일 가깝고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감수성이 예민하고 겁이 많을 때였는데, 그래서 실은 일도 늦게 시작했어요.





• 평소에 어떤 텔레비전 광고가 잘 만든 광고라고 생각하셨는지요?

제가 좋아하는 잣대는 ABC입니다. 이목을 끄는가(Attention),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가(Branding), 메시지가 전달되는가(Communication)인데, 어느 국제적인 조사회사가 크리에이티브를 사전에 평가하기 위해 고안한 항목입니다. 물론 이런 잣대를 공식 삼아 잘 짜맞춘 아이디어가 임팩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전문가라는 미명 하에 개인의 인상비평에만 의존하지 말고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기 전에 한 번쯤은 이런 잣대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어요. 아시다시피 다국적 기업들은 큰돈을 쓰기 전에 반드시 사전조사를 해서 광고 후 결과를 예측해 보는 습관이 있어요.


• 주목을 끌 수 있는 광고를 만들려면 어떤 점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까요?

소비자 인사이트(insight)를 찾아 기술적으로 담아내야 합니다. 사실 이 단어는 우리 업계에서 너무도 많이 오용되거나 남용되는 것 중의 하나지요. 우리말로 쉽게 옮겨지지 않아 문제인데, 사전에는 통찰력이라고 나옵니다. 즉, 사물의 내적 본질을 직관에 의해 명확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랍니다. 동의어 사전에는 직관(intuitiveness)으로 나오는데, 논리를 따지지 않으면서 사물에 대해 직접 알고 배우는 직관이 중요합니다. 좋은 광고 만들기는 ‘인사이트 제대로 찾기’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통의 소비자 조사를 통해서는 얻기 힘들어요. 알아냈다 생각해도 그냥 관찰이거나 스토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어떤 계기에 의해 튀어나옵니다. 꼭 이성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를 광고에 반영하지 않으면 공감대가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광고를 접하는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해요. 아무리 멋진 그림이나 헤드라인으로 유혹을 해도 광고는 광고니까요. “나한테 뭘 해줄 건데?(WIIFM, What’s in it for me?)”라는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안 해주면 눈길도 주지 않아요.


• 그동안 국제광고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셨는데, 우리 광고가 국제 광고제에서 수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 광고를 외국의 잘 된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순진한지 알 수 있습니다. 못 참고 바로 답을 얘기 하거든요. 비싸고 소중한 시간을 예술이나 하라고 낭비하지 않겠다는 광고주의 걱정이 드러나지요. 15초 내에 명함이라도 보여주겠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광고 작가들이 ‘스토리의 힘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반전의 지점을 세심하게 설정하여 깊은 인상을 만드는 스토리텔링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국제 광고제에서도 승률을 높일 수 있어요.


• 주목을 끄는 데는 광고의 느낌도 중요할 것 같은데, 지금 우리 광고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정상수 부사장이 제작했던 광고들. 왼쪽으로부터 모토로라 광고와 도브 광고.

매력이 중요해요. 사람이나 광고나 매력 없이는 관심을 얻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하고 가진 것이 많고 유행에 맞춰 잘 차려 입어도 매력이 없다면 함께 있기는커녕 눈길도 주기 싫습니다. 정이 가지 않거든요. 러시아의 유명한 연출가이자 연극 이론가인 스타니슬라프스키는 배우가 무대에 발을 딛고 서기만 해도 바로 매력이 뿜어져 나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이 상업적 목적의 광고일지라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광고에도 필요합니다. 아니면 가까이 하기 싫어지니까요. 그가 광고의 매력을 강조하면서 스타니슬라프스키(K. S. Stanislavskii, 1863~1938)를 인용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사실적인 수법으로 기존의 연극무대를 시적 상징으로까지 확장함으로써 매력과 매혹의 연출 이론을 구현한 스타니슬라프스키의 미학을 광고가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가 광고를 통해 현대 대중예술의 가능성을 오랫동안 타진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가 그동안 낸 번역서 목록을 보면 모두 아이디어 발상과 크리에이티브에 집중되어 있다. ‘효과적인 TV광고 제작론’ (후퍼 화이트, 1995), ‘잠자는 아이디어 깨우기’(잭 포스터, 1999), ‘데이비드 오길비의 어록’(잭 호돈, 2003), ‘미운 오리새끼’(탐 카이 멩, 2002) 등 그가 번역한 책들의 행간에는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자가 아니면 번역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 광고 창의성은 뺄수록 더해지는 이상한 산수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광고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좋을까요?

단순함이 생명입니다. 우리 광고도 욕심을 버려서 많이 단순해졌지만, 세계의 우수광고에 비해 여전히 복잡해요. 15초 광고에 두 개 이상의 메시지를 넣으면 경제적으로 시간을 썼으니까 안심이 되겠지만 상기도는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는 그동안 제가 각종 크리에이티브 사전 조사 현장에 수없이 따라다니며 보고 배운 결과입니다. 인도 시골에 사는 코끼리 조각의 명인을 다큐멘터리 팀이 찾아가 그렇게 잘만드는 비결이 뭐냐고 묻자 노인은 “칼을 들고, 나무토막을 들고, 코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다 깎아버린다.”고 3단계로 대답했다고 해요. 제가 일했던 어느 외국계 광고회사의 브리프에는 ‘한 마디로(in one word)’라는 항목이 있는데, 이른바 ‘OW 콘셉트’라고 해요. 실생활에서도 ‘한 마디로 말해서….’라는 말을 자주 쓰듯이, 어떤 광고 브랜드나 상품 콘셉트를 말 그대로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는지를 뜻하며, 이는 나중에 크리에이티브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 그렇다면 어떤 광고가 창의성이 떨어지는 못 만든 광고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아이디어가 명쾌하지 않아 ‘실행(execution)’에만 신경 쓴 광고입니다. 우리 모두 위궤양 걸려가며 열심히 아이디어를 내지만, 사람들을 기절시킬 훌륭한 아이디어를 매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가끔 실행에 신경 써 그것을 아이디어라고 우기는 일이 있습니다. 유명모델을 쓰면 기본적으로 주목이 되고, 호주에 가서 찍으면 이국적으로 보이고, 컬러그레이딩을 색다르게 하면 특이해 보이고, 저작권 사서 최신 유행곡을 쓰면 잘 기억되고, 움직임이 많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눈길을 끌고, 모델 얼굴이 잘 나왔는데도 컴퓨터로 닦아
주고, 편집을 현란하게 하고,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 패러디하면 광고가 달라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광고를 튀게 만드는 유용한 방법인 것은 분명하나, 그 모든 ‘실행’의 합계가 단순명쾌한 인사이트를 담아낸 아이디어 하나를 이기기 어려워요. 그래서 많은 광고들이 브랜드는 기억되지 않고
광고 모델만 띄웠다든지 배경만 좋다든지 하는 악평을 받습
니다.


• 어쨌든 튀려는 몸부림을 이해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저 그런 광고보다 일단 튀는 것이 필요하니까요.

튀려는 의도는 좋지만, 너무 유치하게 만든 광고는 문제가 있어요. 고급과 저급의 기준도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오길비의 지적대로 우스꽝스러운 광대노릇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사람들이 매너가 좋지 않은 세일즈맨에게서 물건을 사지 않듯이, 매너가 좋지 않은 광고를 보고도 물건을 사지않아요. 너무 유치해서 기억은 할 수 있겠지만, 정말로 물건을 사려고 할 때 그 광고가 생각나면 브랜드나 상품에 대해 좋은 느낌이 들겠어요?

그는 그동안 국제광고 크리에이티브를 담당하면서 광고의 매력과 고급감을 깊이 생각한 듯하다. 광고인들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지식 상품이 광고물 그 자체라는 점에서 광고 텍스트가 고급품이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광고 창작자의 자존감을 진하게 드러낸다. 더욱이 단순한 ‘한 마디로’ 고급품을 만들 수 있도록 광고 창작자가 더 많은 크리에이티브의 자유권을 확장해야 한다는 대목에 이를 때면, 광고인들이 모여 광고 창작자의 인권 선언서를 낭독하는 것 같은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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