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
김혜경 1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 kimthomas@hanmail.net) 출처 : 광고정보 | 사진 박정훈
살다보면 뜻밖에도

그는 앞으로 거의 모든 매체가 사이버 공간으로 통합된다고 확신했다. 기존의 4대 매체는 물론 각종 뉴미디어 메시 지가 사이버 공간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어떤 매체만을 위한 아이디어 발상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브랜드 접촉점을 형성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아이디어의 수렴과 확산이 반복되며 아이디어가 자가 분열함에 따라 향후에는 통합적 관점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된다고 보았다.

광고 창작자들에게 전문 분야가 따로 있어야할 필요가 있으랴만, 굳이 따지자면 누구누구는 텔레비전 광고에 강하고 누구누구는 인쇄 광고에 강하다는 겨우 그런 정도일 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나면 이런 구분마저 무의미할진대 우리는 그동안 분류하고 이름 붙여 이미지를 고정시키는 것
을 너무 당연시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노션 월드와이드의 김혜경(1962~) 이사 역시 칸느 광고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다음부터 인터넷 광고 전문가처럼 알려지고 있으니 이 또한 억지춘향 격. 살다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일들을 마주치고 꿈에도 생각지 않던 어떤 이미지로 고정되어 다시는 되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에 대한 세간의 피상적인 평판 역시 수정될 필요가 있겠다.


•2007년 칸느 광고제에서 인터넷 광고부문 심사를 한 다음부터 인터넷 광고 전문가로 매스컴에 소개되던데, 광고 전문가면 전문가지 인터넷 광고 전문가가 따로 있겠어요? 그리고 솔직히 카피라이터 출신이 인터넷 광고를 알면 또 얼마나 알겠냐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잘 몰라요. 그런데 제가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에 있었을 때 통합 마케팅을 했는데, 인터넷 브랜드로는 당시 처음으로 인터넷 상에서만 방영되는 15분짜리 드라마를 만들었어요. 그런 경험이 몇 번 있다 보니 칸느 한국 사무국에서 심사위원으로 추천했겠죠. 하지만 이번에 사이버 부문 심사위원으로 가서 정말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어떤 점이 그렇게 놀라웠는지요? 매체 환경의 변화랄까 크리에이티브의 충격이랄까 그런 측면인지요?

사이버 부문이 단순한 인터넷 광고가 아니에요.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 인쇄, 프로모션, 이런 것들이 디지털매체를 통해서 나가며 사이버로 통합되고 있어요. 물론 아직은 필름부문, 인쇄부문 해서 부문별로 나누어져 있지만 모든 것이 다 겹쳐져요. 사이버 매체 상에서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라디오 광고를 듣고 인쇄광고도 보고요. 도브 ‘진화’편 광고가 2007년 칸느 필름부문에서 1등을 했는데, 그 광고가 본래 텔레비전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터넷용으로 만들어 올린 것이 텔레비전으로 갔잖아요. 이제는 개별 영역이 없어지는 거예요.


•사실 특정 매체를 위한 아이디어 발상이라는 개념이 이미 무너졌죠. 아이디어가 좋으면 인터넷용 광고가 텔레비전 광고로 바뀌듯 매체 간 아이디어 발상의 경계가 사라졌어요.

사이버 광고를 모르고서는 이제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까지 왔어요. 요즘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IMC 아이디어가 없이는 현장에 가지를 못해요. 단순히 기존의 4대 매체 아이디어만 가지고는 안돼요. 통합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할 독자적인 아이디어가 있어야 경쟁PT에서 이기는, 그런 상황인 거죠.

그는 앞으로 거의 모든 매체가 사이버 공간으로 통합된다고 확신했다. 기존의 4대 매체는 물론 각종 뉴미디어 메시지가 사이버 공간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어떤 매체만을 위한 아이디어 발상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터넷 광고 아이디어가 괜찮으면 텔레비전 광고로 확장하고 신문 아이디어가 돋보이면 라디오 광고로 변용해서 쓰는 그런 풍경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브랜드 접촉점을 형성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아이디어의 수렴과 확산이 반복되며 자가 분열하는데, 이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다. 그는 이 점에 특히 주목하며 향후에는 통합적 관점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된다고 보았다.


•사이버 상에 노출하는 광고 메시지 역시 크리에이티브 수준을 평가해야 할 텐데, 기존의 4대 매체 광고의 아이디어를 평가할 때와는 다른 어떤 기준이 있는지요?

광고가 그냥 알리는 차원이 아니에요.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라는 단어를 쓰더라고요. 관계를 맺는다
는 것인데, 광고주와 소비자, 제품과 소비자, 그리고 광고와 소비자까지 다 관계 맺기를 시도해야 합니다. 일종의 소비자 참여로 고객을 끌어오는 상황을 만드는 거죠. 예를 들어 나이키 플러스를 보면, 아이팟과 나이키 신발을 연결해 달릴 때 신체상황이 입력되고 노래도 듣고 달린 거리 등 모든 내용을 인터넷에 축적할 수 있어요. 사이트에서는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자기네끼리 놀기도 하는데, 텔레비전 광고도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그런 캠페인이었어요. 광고주 역시 제품개발 단계에서부터 그런 것을 다 고려해서 만들었겠죠.


•단순히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서 눈에 띄는 광고를 만들자는 차원 이상이라는 말씀이시죠?


네. 진짜로 고객들이 경험한 것이잖아요. 그런 식으로하려면 광고주의 자세도 확 바뀌어야 하고 예산도 많이 필요하겠죠. ‘갓 밀크(got milk?)’ 캠페인을 보면 게임 사이트를 만들어 활용했어요. 게임 사이트가 너무 재미있는데 고객들이 우유를 훔치는 도둑이에요. 캐릭터를 움직여 우유를 훔치면서 우유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 철분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그런 내용을 봐야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있어요. 놀라운 거죠. 그냥 광고물 하나 만들겠다고 할 때하고 전체적으로 통합 마케팅을 전개할 때하고는 마인드가 전적으로 달라야 가능해요.

•우리는 보통 콘셉트 찾고 아이디어 내고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광고를 만들고 있는데, 그런 일반적인 절차와는 다른 특별한 과정이 필요한지요?

메인 콘셉트는 같지만 어떤 방식으로 고객들과 만날 것이냐 하는 접점이 달라요. 기아자동차 모닝 광고를 준비하면서, 타깃이 인터넷 유저들인 20~30대 초반이니까 텔레비전을 주력으로 하지 말고 인터넷에 브랜드 사이트를 만들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어요. 단순히 가격이 어떻고 디자인이 어떻고 그런 내용만 담지 말고 그 안에 들어가서 놀고 정보도 얻고 커뮤니티도 만들고 온-오프(On-Off)가 병행되는 브랜드 사이트를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이 역시 브랜드의 고객접점을 다르게 생각한 것이죠.


어디서 어떻게 고객을 만날 것이냐 하는 접점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매체나 시간 또는 구전이나 제품 등 브랜드 접점이 엄청나게 많은데,
접점을 많이 찾아낼수록 그 브랜드는 강해질 수밖에 없어요.
누가 얼마나 접점을 잘 찾아내느냐에 인게이지먼트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겠죠.

•사이버 광고 역시 창의성이 중요한데 앞으로 어떤 아이디어로 접근하실 생각인지요? 이른바 아이디어 인게이지먼트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디서 어떻게 고객을 만날 것이냐 하는 접점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매체나 시간 또는 구전이나 제품 등 브랜드 접점이 엄청나게 많은데, 접점을 많이 찾아낼수록 그 브랜드는 강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누가 얼마나 잘 찾아내느냐에 따라 인게이지먼트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겠죠. IMC를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들어보면 브랜드에 어떻게 다가가게 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정말 대단해요. 그래서 자꾸 젊어져야 하고 사람들을 키워야 해요. 저 정도 연차의 사람들은 후배들을 키워주는 것이 결국 자기 스스로를 키우는 길이거든요. 그 사람들을 키워서 좋은 생각들을 빨리 갖게 할 필요가 있어요.

그는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를 관계를 맺는다는 뜻으로 설명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약혼’이라는 우리말 단어를 떠올렸다. 약속이나 계약, 약혼이나 동참, 적군과의 교전, 그리고 기어의 맞물림 같이 여러 경우에 쓸 수 있는 이 영어 단어는 관계를 맺는 대상이 소비자일 경우에는 ‘약혼’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서로 가까운 시일에 결혼하기로 하되 일종의 유예기간 갖기. 이것이 약혼의 본질이라면 경우에 따라서 언제든지 헤어 질 수 있다는 또 다른 뜻이 숨어있다.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 역시 혼인신고를 미룬 채 언제까지나 약혼한 상태로 있으면서 상대를 저울질해야 하는 운명일 터. 이때 주도권이 소비자 쪽으로 넘어가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브랜드 접촉점에서 소비자와의 참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약혼에서 결혼으로 골인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말한 인게이지먼트의 참뜻이 아니겠는가.


•본부장이라는 직책이 사실은 모든 일에 다 관여하며 책임지는 자리 같지만 경우에 따라서 없어도 그만일 수 도 있잖아요. 이때 조직 내에서의 존재감이랄까, 그런것들이 고민스럽기도 할 텐데요.

저는 지금 본부장이지만 ECD 역할도 하고 있어서 다행스럽게도 후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 하고 마음 편하게 일하는 축인데, 어떻게 보면 광고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고나 할까 그렇거든요. 설사 광고를 안 하면 어떠랴 하는 생각도 가끔씩 들어요. 사실 광고가 아주 생산적인 일은 아니기 때문에 광고가 제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도 해요. 제가 광고에 특별히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후배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금방금방 받아들여요. 또 제가 귀가 얇아요. 다행히 저와 마음이 맞아 큰 무리 없이 진행되고 정말 좋은 아이디어일 경우에는 간섭 안 하고 맘대로 알아서 하라고 하지만, 만약 아닐 경우에는 후배들하고 같이 밤을 새워 아이디어를 내며 달라붙어서 해요. 그리고 프레젠테이션도 제가 안나서고 직접 시켜요. 아무래도 프레젠테이션을 한 사람한테 스포트라이트가 가잖아요. 하는 도중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와주지만 끝까지 책임지고 하라고 해요.


•알아서 컸건 누가 키워줘서 컸건 간에 어쨌든 지금 여기까지 왔잖아요. 후배들은 어떤 식으로 커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좋은 선배를 만나서 잘 돼서 큰다면 더욱 좋겠지만 모두 운이라고 봐야죠.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저는 실전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고 봐요. 매사에 겁내지 말고 크게 깨지다 보면 언젠가 크게 얻거든요. 겁나고 두려워서 안 하고 한발 물러서고 그러다 보면 결국 자기 스스로 존재감을 흐리게 돼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깨질 때 깨지더라도 크게 하라고 말하고 큰 프레젠테이션에는 꼭 들어가라고 해요.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스스로 커나갈 수 있어요. 그리고 후배들한테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들과 일하라고 그래요.


•어떤 사람은 자기가 더 뛰어나야 되고 더 알려지겠노라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쓰기도 하잖아요.

김혜경 이사가 제작에 참여했던 광고들.
왼쪽으로부터 KT 기업 광고와 기아 모닝 광고

굉장히 잘못된 것이죠. 잘하는 사람들은 잘하는 사람들끼리 배우면서 크는 것이 많아요. 자기들끼리 부딪히면서 시너지를 일궈요. 그러니까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들과 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서로서로 배우고 그래야 자기도 크고 빛나는 것이지, 나보다 못하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내가 빛나겠지 하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저는 운 좋게도 휘닉스컴 시절이나 TBWA에서도 그렇고 여기에서도 그렇고 저보다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광고주를 자주 만나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개입을 많이 해서 단점이 되는 측면도 있을 텐데, 어떠세요?

광고주의 의중을 더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좋아요. 정확하게 파악한 것을 잘 요리해서 좋은 크리에이티브로 만들어 내면 설득이 더 잘 되니까요. 하지만 어떤 때는 좋은 것을 만들어도 광고주 입맛에 안 맞으니까 아예 나가지도 못해요. 광고주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장단점이 있는 거죠. 제가 TBWA에서 이노션으로 옮길 때 기획과 제작을 같이하는 본부장의 역할 때문에 사실은 굉장히 망설였어요. 영업 쪽으로 들어가면 크리에이티브 마인드를 잃어버린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았죠.


•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새로운 도전일 수도 있잖아요.

솔직히 광고를 오래할 생각은 없는데, 오래할 것 아니라면 한번 해보고 아니면 말고 하는 마음에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획도 굉장히 매력적인 것 같았고, 크리에이티브 쪽만 바라봐서는 반만 보는 것 아니겠냐 싶어 제작과 기획까지 한번 총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래서 옮겼는데 개인적으로는 잘 됐다고 생각해요. 어떤 면이 그런가하면, 제 이름을 걸고 나가지도 않고 다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개인적으로 각광을 받으니 마음이 굉장히 편해진거죠. 쟤는 저 광고 만들었는데 나는 뭐하고 있지, 내 광고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되고 왜 사람들은 내 광고를 몰라주지, 이런 식으로 비교하는 마음이 없어졌으니까요. 후배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면 발전시키는 이런 일들이 훨씬 더 보람 있게 생각되고, 제 스스로도 마음이 편해지고 넓어지는 그런 면이 있어요.


자기 이름을 걸고 나가지 않으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는 김혜경. 누가 자기를 알아주기만 하면 사흘을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을 광고 창작계의 풍토에서 그의 이런 발언을 진솔한 고백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위장된 자기 포장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JR동해 ‘그래, 교토로 가자’ 캠페인의 카피를 20년째 쓰고 있는 오타 메구미(太田惠美)를 일본 덴츠(電通)에 연수 가서 만난 뒤, “50살이 되도록 여전히 카피라이터로 조용조용 일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늘 뭔가 색다른 것을 찾아 좌충
우돌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광고정보’ 2006년 3월, 70쪽)고 고백한 바 있었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남과 비교하거나 자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괜히 좌절하고 우쭐대는 광고 창작자들의 저 고질적인 좌충우돌 습벽에서 벗어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광고인들에게 ‘유행을 좇지 않을 용기’도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그런 용기가 있었기에 어쩌면 오타 메구미의 조용조용한 일상을 더 빨리 닮아갈 수 있었으리라. 더불어 광고 창작에서 한 발짝 빠져나와 광고 기획이라는 새로운 강물에 적극적으로 발을 담근 경험이 또 다른 깨달음을 일러주었을 터. 이 또한 살다보면 뜻밖에 그려지는 인생의 풍
경화가 아닐까?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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