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
이해하기 쉬운 소비자 언어 -김명하-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 kimthomas@hanmail.net) 출처 : 광고정보 | 사진 박정훈


>>요즘 광고를 보면 너무 어려운 광고 언어들이 너무 많다. 정보통신 제품의 광고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몇 번을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카피,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유식한 언어의 유희. 이런 광고들이 판을 치고 있는 이때, 그는 이해하기 쉬운 말로 광고 메시지를 구성하라고 한다. 광고 창의성의 개념을 원칙적이고 평범하게 정의하고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원칙적이고 평범한 이야기가 더 공감이 가지 않겠는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청년정신이 앞으로 어떻게 구현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일은 광고계 후배들에게도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세간의 이런저런 평판이나 과도한 기대가 퍽 부담스러울 수 있으련만 그는 괘념치 않았다. 한독약품과 해태제과에서 보낸 광고주 쪽의 17년과 1981년부터 시작된 광고회사 이력까지 포함해 45년 이상을 광고계에서 보냈으니, 모름지기 일생일업(一生一業)이라 할만하다. 이제, 그는 광고계 원로로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원로의 책무를 다하고 싶어 한다.

>>애드아시아나 IAA세계광고대회와 같은 국제광고 행사에 깊이 관여해오셨습니다. 국제광고에 눈을 돌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제가 1977년 애드아시아에 참석하느라 필리핀 마닐라에 처음 갈 때는 국제화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필리핀이 우리보다 GNP도 높았던 때라 오히려 광고가 우리 땅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죠. 해외 비즈니스를 하고 수출을 많이 하면 당연히 광고는 따라가야 하잖아요? 제품이 나가는데 광고가 안 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35차 IAA세계광고대회 서울대회 이후 한국광고의 수준이 높아져 외국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봅니다. 초창기에 뿌려놓은 씨앗이 이제 싹을 틔우는 것 같은데 국제광고의 맥락에서 우리 광고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1990년대 초만 해도 우리 광고가 칸느나 클리오, ACC 같은 국제 광고제에서 상을 못 받았어요. 문화적 차이가 컸죠.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큰 화제를 낳은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 같은 경동보일러 광고를 틀어 줘도 반응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상 받은 광고라도 외국에 내보낼 때는 기준을 좀 달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광고계의 이런저런 국제행사에 참여하시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요?
80~90년대 아시아 광고를 보면 태국 광고는 태국의 혼이 토대에 있고 일본 광고는 외국 것을 가져 와도 뭔가 일본냄새가 났는데 우리나라는 언제부턴가 표현 기법 등에서 서구화된 광고가 판을 치고 있어요. 서양 것을 무조건 배격하라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서나 혼이 깔려있는 광고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런 것은 교육의 부재 때문입니다. 한국 문화나 역사 공부를 어릴 때부터 해야 하는데 현대화되면서 서구적 가치관만 교육해서 그런 문제가 생겨요.

그는 일찍이 우리 상품이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국제광고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우연한 기회에 애드아시아에 참가한 다음부터 우리 광고의 국제화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광고계 국제행사에 부지런히 참여하면서 한국 광고를 대외적으로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김석년, 신인섭, 윤석태, 이기흥 같은 원로 광고인들이 늘 그와 더불어 이런저런 국제행사에 함께 참여한 주요 멤버였으니, 이제 다음 세대의 젊은 후배들이 나서야할 차례다.

>>김앤에이엘(Kim & aL)이라는 광고회사를 앞으로 어떻게 끌고 가실 계획이신지요?
광고주가 편안하게 찾아보고 싶은 광고회사, 광고인들이 자기 아이디어를 마음대로 펼치며 편안하게 광고를 하는 그런 광고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저는 크리에이터가 광고물을 만들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비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중요하게 봅니다.
철칙이죠. 사무실에서만 만드는 광고는
아무리 훌륭한 카피라이터나 전략가라도 한계가 있어요.


우리는 독립 광고회사인데 우리나라 여건에서는 참 살아남기가 힘들어요. 저는 오랫동안 하우스에이전시에 있었지만 이제 독립 광고회사의 경영자로서 광고인들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소박하지만 실력 있는 광고회사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동안 이근상 대표와 백승화 대표 같은 코래드 후배들과 회사를 공동으로 운영하다 헤어졌고 결국 김앤에이엘이라는 새로운 회사를 만드셨는데, 아끼던 후배들과의 작별이 어떻게 보면 좀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어요.
보는 시각에 따라서 같이 호흡이 잘 맞았을 텐데 왜 떠났을까 할 수도 있겠죠. 저나 이근상 씨, 백승화 씨나 서로 코래드라는 큰 회사 시스템에 있을 때와 작은 회사에 있을 때 모든 것이 달라져야한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못해도 코래드에 있던 사람들은 이해하리라고 봐요. 큰 회사나 작은 회사에서 저나 백승화 씨가 각각 할 수 있는 역할이 따로 있다고 봤어요. 깊이 다 말할 수 없지만 서로 많이 이해했어요. 성격이 안 맞아서 떠난 것은 아닙니다.

>>독립 광고회사가 현재 굉장히 어렵습니다. 광고주가 광고 물량을 대폭 줄이는 상황에서 신생 회사를 이만큼 유지하기도 힘들다고 봅니다. 코래드 때 경험도 있으시겠지만 부실 채권에 대한 걱정은 없으신지요?
늘 신중하게 판단할 수밖에요. 제가 코래드 있을 때 해태그룹으로부터 480억 원을 부도 맞았어요. 당시 대한민국 광고계 전체가 다 부도난다고 했을 때 코래드는 KOBACO의 부채 240억을 다 갚았어요. 당시 외부에서는 김명하가 어떻게 자금을 조달했을까 하며 말도 많았겠지만 광고인은 광고로 접근하는 것 이상의 큰 무기가 없어요. 저는 광고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 한길을 왔고 또 후회하지 않아요. 내 자식에게도 광고를 시켜도 좋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우리나라 광고 현장은 어렵고 험한 가시밭길이 되겠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이 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동안 광고를 해오시면서 정말로 좋아한 광고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만족했던 광고보다 만족하지 못한 광고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광고주의 귀한 돈을 효과적으로 쓰지 못했구나 하는 자괴심이 더 큽니다. 광고주와 광고계에 미안하게 생각하는 대목이죠. 제가 50대일 때는 저 혼자서 오히려 위로도 했어요. 아무리 베스트셀러 작가라도 언제나 베스트셀러를 쓰지는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나고 보니까 광고주의 광고비가 얼마나 귀한 돈인지 더 절감해요. 제가 좀 더 깊이 몰입하고 광고인 각자가 조금 더 잘했더라면 후회하는 마음이 좀 덜하겠지요.

>>좋은 성과도 많았는데, 겸손의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아니요. 정말 제 평소 생각을 말씀드리고 있어요. 다만 추억은 많아요. 1970년대 초에 부라보콘 아이스크림 광고는 참 재미있게 했어요. 그때 아이스크림은 여름에만 먹지 겨울에는 안 먹는 계절상품이었어요. 그래서 겨울에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화롯가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광고를 했는데, 엄청나게 반응이 좋았어요. 광고하는 보람을 그때 느꼈죠. 해태 왕사탕은 딱딱하고 달기만 해서 많이 팔리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달지 않고 씹어 먹을 수 있는 사탕이 없겠느냐고 개발부에 제안했더니 개발부에서 사탕에다 땅콩을 넣었어요. 그게 77년에 나와 아직도 팔리는 알사탕이에요. 음료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써니텐인데, 당시 써니텐은 과육이 상한 것처럼 밑에 가라앉았어요. 소비자의 불만도 많고 해서 크리에이터들을 개발부에 보냈는데, 개발부 이야기를 듣고 나온 사람 이야기가 흔들어줘서 마셔야된다고 해서 그 “흔들어주세요”라는 카피가 나왔어요.

>>그 카피는 고 이낙운 선생님께서 쓰신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돌아가신 분이니까 깊이 이야기를 안 하겠는데 그때 연합광고는 매체대행만 했어요. 우리가 콘셉트를 주었고 한철 감독이 광고를 만들었죠.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일은 해태에서 뭔가 공익적인 것을 해야 되겠다 싶어 축구공을 경품으로 내걸었어요. 축구를 보급하고 기타를 제공하며 연주를 하게했죠. 세종문화회관에서 어린이 연극 ‘피터팬’을 만들어 올리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먹는 걸 흘린다며 공연장에 어린이 입장을 안 시켜줘서 통사정을 했지요. 가수 윤복희 씨가 피터팬으로 나왔는데 첫 번째 공연에 전국에 있는 장애인들을 버스 100대에 실어 초청했어요. 끝나고 해태제과 구경도 시키고 과자도 나눠주고 했는데 정말 가슴이 뭉클했어요. 그런 일들을 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같은 것을 어렴풋하게 생각했어요.

그의 광고 인생 초창기에는 광고주로서 보람이 많았던 듯하다. 아이스크림을 겨울에도 먹는 상품으로 자리매김 하거나, 알사탕 같은 재미있는 제품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으니까. 이후 코래드의 성공으로 탄탄대로를 걷다가 모기업 해태그룹으로부터 480억 원의 부도를 맞는 위기에 봉착했지만 이를 극복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사정이 반영된 탓인지 그가 좋아한다는 광고도 날카로운 시각이 느껴진다.
그는 1997년 홍콩에서 집행된 이코노미스트 광고를 가장 좋아하는 광고로 꼽았다. 양끝에서 활활 타들어가는 양초 그림 아래 “한국의 놀라운 성장은 정말로 끝이 없는가?”라는 의문형 헤드라인을 쓴 광고이다. 이 광고를 좋아하는 이유를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카피와 아트의 완벽한 조화, 심플한 레이아웃, 그리고 경제 평론지다운 혜안을 갖고 하나의 제작물에 메시지를 군더더기 하나 없이 녹여내고 있다. 그들의 날카로운 시각을 우리가 가졌더라면 오늘의 우리 경제가 이랬을까 하는 안쓰러움이 든다.”(“촌철살인의 메시지, 심플한 크리에이티브”, ‘광고정보’, 1998년 1월호)

>>광고 창의성의 평가 문제는 골치 아픈 주제입니다. 소비자나 광고주 또는 광고회사에서 보는 관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데,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시는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해하기 쉬운 소비자 언어입니다. 제가 해태제과에 있을 때 과자광고를 많이 했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이면 생각하지 않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메시지가 효과적이라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윤리측면에서는 아내나 아이들이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광고라면 괜찮다는 생각을 했죠. 유니레버에서 쓰던 바이블 10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핵심 아이디어(core idea)가 있느냐라는 것이에요. 경쟁사와 차별화가 되느냐, 소비자가 공감하며 동참할 수 있느냐 등 10가지 기준 중에 두세 가지를 안 가진 광고는 창의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요즘은 소비자와의 관계 형성이나 인게이지먼트 같은 것을 굉장히 중요시하는데 리뷰를 하실 때는 주로 어떤 기준으로 하세요?
광고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문제는 크리에이티브 쪽에서 책임지니까 저는 광고주의 메시지가 정확히 들어가 있는지를


상당히 철두철미하게 봅니다. 제가 더 중요시 하는 것은 크리에이터가 광고물을 만들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비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철칙이죠. 저는 오길비를 직접 만나서 단독 인터뷰도 하고 회의에서 그 사람이 점검하는 것도 여러 번 봤는데 그분이 그랬어요. 광고회사의 기획자나 크리에이터가 되면 지리학 공부도 하고 주유소에서 일요일이면 점퍼입고 기름도 넣어 보고 해야 한다고요. 이럴 때 진정한 광고가 나올 수 있는 것이지 사무실에서만 만드는 광고는 아무리 훌륭한 카피라이터나 전략가라도 한계가 있어요.

>>광고계의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한 말씀 해주시지요.
제가 생각하는 광고란 광고업으로서의 광고가 아니라 인간경영으로서의 광고입니다. 이런 점에서 광고인은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이성 두 가지를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제가 광고를 해오며 즐거웠던 순간은 대우전자를 광고주로 영입했을 때보다 대우전자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하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인데, 그런 기쁜 순간을 광고인 각자가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순간이 많이 쌓이면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며 광고를 할 수 있겠지요. 제가 한참 일하던 시절에는 노이즈가 많지 않아 소비자에게 무엇을 말하면 그 정보가 그대로 들어가서 꽂힐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매체도 너무 많고 정보도 많아요. 후배 광고인들은 제가 광고할 때에 비해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서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나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언제나 있었잖아요? 뻔한 매체란 없고 뻔하고 낡은 생각만 있다는 말도 있지만, 앞을 가로막는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창의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는 광고 창작자들이 아이디어 발상을 하기 전에 소비자를 만나서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광고를 만드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는 철저히 현장에서 듣는 소비자의 상품 경험 속에서 아이디어를 건져 올려야 한다는 것인데, 다른 말로 하면 책상머리에서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끙끙대지 말고 발바닥으로 아이디어 발상을 하라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고 강정문 선생님 역시 비슷한 말을 세상에 남겼다. “책상을 떠나시오. 크리에이티브 발상의 단서는 책상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장에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맨은 깊은 산 절간에 앉아 명상만 하고 있는 선승이나 학승이 아니라 시장에 나가 중생과 살을 비비고 다니는 탁발승입니다.”(“강정문의 대홍 생각(전무 메모 14): 카피라이터를 위한 음모”, ‘뭐가 그리 복잡하노? 짧게 좀 해라’, 청람문화사, 2000, 249쪽)
이런 생각의 연장선위에서 그는 쉬운 광고가 창의적인 광고라고 보았다. 그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 개념은 ‘이해하기 쉬운 소비자 언어’이다. 요즘 광고를 보면 너무 어려운 광고 언어들이 너무 많다. 정보통신 제품의 광고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몇 번을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카피,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유식한 언어의 유희. 이런 유식하고 어려운 광고 언어가 판을 치고 있는 이때, 그는 이해하기 쉬운 말로 광고 메시지를 구성하라고 한다. 그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을 원칙적이고 평범하게 정의하고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원칙적이고 평범한 이야기가 더 공감이 가지 않겠는가? 한편으로 시의적절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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