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
소설을 사랑한 카피라이터 -김원규-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 kimthomas@hanmail.net) 출처 : 광고정보 | 사진 박정훈



김원규는 ‘생각의 뷰(view)’를 특히 강조하였다. 어떤 관점에서 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대상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광고 창의성의 뷰에 따라 브랜드의 운명도 달라진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매체나 소비자 환경이 변해도 광고의 콘셉트나 접근방법의 원천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대상을 다르게 보려는 ‘생각의 뷰’만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광고 창의성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쳐야 미친다” 혹은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사상을 아시는지. 미쳐 버려서 미친 뒤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무당 팔자를 타고난 사람들이다. 우리 광고계에는 여러 면에서 무당 팔자를 타고난, 열정이 드센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어떤 분야의 막장까지 도달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사람들이다. 커뮤니케이션즈 오브코스의 김원규 대표(1957~) 역시 ‘불광불급’ 도당들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다. 그는 20년 넘게 광고물을 모아온 광고 수집광이자 잡다한 생각들을 수시로 메모하는 메모광이기도 하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하도록 내몰았을까? 농업적 근면성으로 광고물을 모으고 메모를 해왔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그 무엇이 있다.

>>광고물 자료가 많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언제부터 자료 수집을 하셨는지요?
제가 한 20년 넘게 구독한 잡지에 실린 광고들을 스크랩해왔어요. ‘보그’, ‘엘르’, ‘지큐’, ‘에스콰이어’ 같은 것들인데 사원이나 대리 때는 외국 잡지 하나씩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인 부담이 상당히 됐거든요. 어떤 때는 청계천 헌책방에 가서 과월호를 사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명품 광고를 모으기만 할 게 아니라 글로 한번 써볼까 싶어 LG애드 사보에 브랜드별로 하나씩 소개하다가 나중에는 모아서 책도 냈어요. 사실은 지금도 계속 스크랩을 한답니다.

>>그렇다면 외국 잡지들을 보면서 광고 공부를 한 셈이겠네요. 카피의 내공도 그렇게 해서 키운 셈이겠고요.
제 주변에 일어나 영어 잘하는 카피라이터나 AE들과 함께 좋은 광고 케이스 스터디를 참 많이 했어요. 일본의 아지노모토 광고나 토요타 광고 카피는 정말 좋잖아요. 특히 라디오 광고나 60초짜리 카피를 보면 광고 카피가 아니라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그런 광고를 보며 좌절감을 느끼면서 제가 그 정도가 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생각도 많이 했었죠. 저는 다달이 나오는 ‘광고정보’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데 기고한 분들의 글이 좋으면 무작정 전화를 걸어 모르는 내용을 묻기도 하면서 배웠어요. 그렇게 해도 다 용납되는 시절이었으니까요. 김태형 선생님이나 이만재 선생님 그리고 이병인 선생님 같은 분들에게 전화를 걸었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래저래 오래 전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셨겠네요.
참 부끄러운 고백인데 신춘문예에 일곱 번이나 투고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같은 여러 매체에 등단할 기회가 많은데 그때는 신문사 신춘문예가 최고의 등용문이어서 별별 짓을 다했죠.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황순원의 ‘소나기’라는 소설을 읽고 나서 충격을 받아 소설을 하나 썼어요. 원작의 시골 배경을 도시생활로 바꾸고 주인공 이름도 바꿔 새로 쓴거죠. 그게 처녀작이었는데 이사 다니면서 다 없어졌어요. 아마 글에 대한 관심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나 봐요.

소설 창작과 카피 창작을 겸했던 올더스 헉슬리는 “열 편의 괜찮은 소네트를 쓰는 것보다 한 편의 효과적인 광고(카피)를 쓰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는데, 이 말은 문학에 대한 광고의 우월성을 나타낼 때 자주 인용된다. 그 역시 어린 시절에 글쓰기를 좋아한 탓에 자연스럽게 카피 창작으로 그 대상이 옮겨간 듯하다. 그렇다면 그는 실패한 예술가일까? 아니면 소설쓰기보다 어렵다는 광고 카피를 쓰면서 사랑의 대상을 바꿔버린 것일까? 그는 소설의 바다에서 항해하겠다는
꿈에서 비켜서 잠깐만 광고를 하려했었지만 이제는 광고 창작이 본업이 되었다.

자원도 부족하고 땅덩어리도 좁은 우리나라가 먹고 살 수 있는 길은 창의적인 광고를 많이 만드는 데 있어요. 창의적인 광고가 많아지면 우리나라 브랜드를 파워브랜드로 만드는 근간이 되니까요. 따라서 광고 크리에이터는 광고 한 편으로 끝나지 않고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하라는 어마어마한 천명(天命)을 받고 태어난 사람들일 수도 있어요.

>>그동안 카피를 써오면서 가장 많이 배운 스승은 어떤 분들인지요?
제가 정식품이라는 광고주 쪽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카피를 배우지 못했어요. 다만 대홍기획으로 옮겼을 때 돌아가신 강정문 대표님이 정말 치열하게 가르쳐주셨죠. 제가 광고를 배운 첫 번째 스승입니다. 당시에 저는 광고주한테 통과가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강 대표님의 리뷰를 통과해서 인정을 받으면 제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했어요. 술을 좋아하셨던 그분은 밤 열시쯤에 사무실에 나타나세요. 저희는 내일 모레 곧 시안이 들어가야 하니까 마음이 바쁜데도, 칠판에다 뭔가 쓰면서 “요즘 이런 거 아나?” 하시며 술기운에 막 이야기를 시작하세요. 그렇게 되면 30~40분은 금방 지나가버리잖아요. 그때는 바쁜 마음에 빨리 끝내주기를 바랬는데 다음 날 아침에 생각해보면 전략의 큰 흐름을 이야기하셨다는 것을 알았어요. 당신께서 정말 감동 받은 것을 정리하고 발표할 시간이 없으니까 자기 새끼들한테 그렇게 해주신 거죠.

>>대홍기획 시절에는 주로 어떤 캠페인을 맡으셨는지요?
그때 롯데제과 팀에서 일 년에 텔레비전 광고를 30~40개 정도 만들었나 봐요. 하다 보니 재미도 없고 오락프로 베끼기도 하면서 이렇게 카피라이터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많았어요. 한번은 대웅제약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데 논리적인 카피를 정말 못 쓰겠어요. 이거 안 되겠다 싶어 선배의 소개로 LG애드로 가려고 사표를 냈는데 당시 강정문 이사님이 사인을 안 해주세요. 세 번째로 찾아갔더니 “김 군, 여기서 나하고 헤어지면 광고 바닥에서 다시는 못 볼 걸세.” 그러시더라고요. 그래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사인을 받기는 했지만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해요.

>>실무자 시절에 추구하던 스타일과 현재의 광고 스타일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텐데 젊은 감각을 따라가기가 버겁지는 않으세요? 요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크리에이티브 포인트는 무엇인지요?
저도 계속 나이를 먹어갈 것이고 광고의 어프로치는 계속 새로워지겠지요. 계속 새로운 매체가 나올 텐데 그걸 완벽히 따라갈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제가 나이를 먹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거든요. 광고에는 절대 변하지 않는 어떤 본질이 있어요. 저는 후배들에게 ‘뷰(view)’라는 개념을 굉장히 강조해요. 어떤 포인트에서 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어요. 전문용어로 차별화라는 말을 쓸 수 있겠지만 결국 변하지 않는 본질이 ‘생각의 뷰’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떤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맞는 그릇에 담는 과정은 달라질지 몰라도 광고의 콘셉트나 어프로치 방법의 원천은 변하지 않아요.

>>지금 독립한 마당에 작은 브랜드를 키워가는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 브랜드는 총알이 부족하니까 어쩌면 훨씬 더 뾰족한 아이디어가 필요하겠지요. 소형 광고주의 광고를 만들 때 어떤 점을 강조하며 메시지를 개발하시는지요?
총알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업 지향적인 광고를 많이 원하지만 제가 끝까지 고집을 부려요. 그분들은 광고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설득만 잘하면 엣지(edge)가 있는 광고 표현을 오히려 잘 받아들이십니다. 그동안 전략이나 콘셉트 없이 40~50억을 쓰면 브랜드를 키울 수 있다는 식으로 물량으로만 접근해온 광고인들이 있어 소형 광고주께서 지레 겁을 먹는 경우가 많았죠. 그분들한테 브랜드 전략을 단계적으로 설명하면 오히려 신뢰가 더 쌓입니다. 한편으로 제가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내서 광고주하고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니까 오히려 광고회사 내 시어머니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제가 하고 싶었던 아이디어를 시도해보는 보람도 있어요. 광고하는 맛이 있는 거죠.

그는 ‘생각의 뷰(view)’를 특히 강조하였다. 어떤 관점에서 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대상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광고 창의성의 뷰에 따라 브랜드의 운명도 달라진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매체나 소비자 환경이 변해도 광고의 콘셉트나 접근방법의 원천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대상을 다르게 보려는 ‘생각의 뷰’만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광고 창의성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다가올 광고 인생길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몫도 그 ‘뷰’를 늘 새롭게 하는 감각의 앵글에 있다고 판단하는 듯 했다. 그리하여 그는, 카메라에서 사진에 포함될 대상물의 영역을 보여주는 뷰 파인더(view finder) 같은 광고 창작자라고 하겠다.

>>아이디어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독립광고 회사들이 많아질수록 그 안에서 경쟁이 더 치열해져 이전투구가 더 심화되지 않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저희 회사 같은 독립 광고회사가 더 많이 생겨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크리에이티브 경쟁이 됩니다. 광고회사의 본질은 크리에이티브 수준을 놓고 싸우는 데 있습니다. 브랜드 철학이 있고 크리에이티브 철학이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자기의 철학에 맞는 크리에이티브를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양적인 차원에서의 광고 강대국이 아니라 진짜 질적인 차원에서 광고 강대국이 될 필요가 있어요. 저는 세상에는 두 가지 형태의 에이전시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자기가 하기 싫으니까 대행을 시키는 경우죠. 직업에 귀천이 없지만 퀵서비스 같은 경우는 자기가 하기 싫으니까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거에요. 다른 하나는 남들이 못하는 것을 대신해주며 전문성을 강조하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죠. 그렇기 때문에 누가 간섭하고 억지로 강요하는 것은 많이 잘못됐어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고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광고회사의 규모보다 크리에이티브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광고인들 역시 연차가 늘어간다고 해서 전문가가 되지는 않기 때문에 자신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엄청나게 노력해야 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제가 독립하고 나서 보니까 크리에이티브에 목숨을 거는 자세가 가장 중요해요. 저도 그동안 열심히는 했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크리에이티브 프레젠테이션에서 이기려고 얼마나 치열하게 했을까 물어보면 자신이 없어요. 밤도 많이 새웠지만 목숨을 걸만큼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의 뷰’를 말씀드렸는데 A라고 생각한 걸 B라는 또 다른 방향에서 목숨을 걸만큼 생각해보면 그 폭이 달라져요. 크리에이티브의 접근 방향이나 넓이나 깊이가 달라지는 거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늙을 때까지 일하는 크리에이터로 남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그럼 정말 부러운 광고 인생이 되겠네요. 그날을 위해서 지금도 이렇게 아이디어 메모를 많이 하시는지요? 사실 저는 아이디어가 안 나오면 메모장을 제일 먼저 봐요. 그 다음에 20여년 모아놓은 광고물 자료들을 들춰보며 크리에이티브 모티브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쿡이라는 광고에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카피가 있는데 저는 광고의 순기능을 믿는 사람입니다. 광고가 할 수 있는 일이 엄청나게 많죠. 어떤 윤리책보다 15초짜리 광고가 정말 유익한 대국민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요. 언어는 사회상과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개고생’이라는 말이 아무리 사전에 표준어로 나왔다손 치더라도 사람들이 비속어로 느낀다면 비속어이거든요. 주목을 끌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브랜드 자산을 형성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지는 의문입니다.

>>주목은 끌었다 해도 긍정적인 브랜드 자산을 형성하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겠지요.
결과적으로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봐요. 제가 1990년에 전인화 씨와 장재근 씨가 에어로빅 선수로 출연한 사조참치 캔 광고를 했었어요. 그때 마지막 카피가 “따먹고 합시다!”였죠. 이 표현이 심의에 걸려 저희가 캔을 가지고 심의위원들한테 가서 어떻게 드시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 분이 이거 따 먹는 거라고 대답해서 불순한 의도가 전혀 없었음을 인정받아 광고가 나갔어요. 그랬는데 한 10일쯤 지나니까 스포츠 신문에서 ‘요즘 광고 저질’이라면서 사조참치 광고를 예로 들었어요. 그때는 웃어넘겼지만 제가 광고 표현의 순기능적인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순간적으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표현을 쓸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광고 브랜드의 이미지 형성이나 매출 신장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생각해야죠.

>>광고 창작자란 이래저래 참으로 어려운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무당 팔자를 타고났어요. 크리에이터들은 팔자가 참 드센 사람들이죠. 저는 생각의 힘을 믿습니다. 자원도 부족하고 땅덩어리도 좁은 우리나라가 먹고 살 수 있는 길은 창의적인 광고를 많이 만드는 데 있어요. 창의적인 광고가 많아지면 우리나라 브랜드를 파워브랜드로 만드는 근간이 되니까요. 따라서 광고 크리에이터는 광고 한 편으로 끝나지 않고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하라는 어마어마한 천명(天命)을 받고 태어난 사람들일 수도 있어요.

광고 창작자란 어마어마한 천명(天命)을 받고 태어난 사람들일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어떤 분은 철없는 과대망상이라며 폄하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자기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의 표현이자 리더로서의 책무가 스며있는 다짐이라고 생각한다.
광고계의 보헤미안 김동완 선생이 소설의 바다에서 건진 20편의 광고 이야기라며 ‘카피라이터가 사랑한 소설(아트북스, 2007)’이라는 에세이집을 냈듯이,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앞으로 ‘소설을 사랑한 카피라이터’라는 에세이집을 낼지도 모르겠다. 그는 지금도 자기 일에 미쳐 살며 하루도 빠짐없이 이런 저런 메모 쪼가리를 남기고 있으니까. 소설이란 본시 메모에서 시작되는 장르였고 그의 젊은 날을 사로잡았던 글쓰기 양식이었으니까.

(다음 달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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